등급제 폐지의 기만, 장애인콜택시는 왜 여전히 '허가' 받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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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제 폐지의 기만, 장애인콜택시는 왜 여전히 '허가' 받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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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하석미 칼럼니스트】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던 날, 국가는 약속했다. 이제 숫자로 사람을 등급 매기지 않겠다고. 1급, 2급, 3급으로 줄 세우던 시대는 가고, ‘심한 장애’와 ‘심하지 않은 장애’라는 단순한 분류로 장애인의 삶을 존중하겠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이동은 더 자유로워졌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장애인 콜택시를 등록하려는 순간, 우리는 처참한 현실을 마주한다. 등급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나를 증명해야 할 서류와 굴레는 오히려 더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서류 더미 속에 갇힌 이동권

지자체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라지만, 등록을 위해 요구되는 서류는 많다.

1. 장애인증명서 2. 장애정도결정서 3. 추가심사결과안내문 4. 이용신청서 5. 이용자 준수사항 동의서 6.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 7. (경우에 따라) 종합병원 의사 진단서.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지체장애 있음”이라는 문구로는 부족하다.“하지 기능에 중대한 제한이 있음”이 명확히 기재되어야 한다.“독립 보행이 불가능하다”는 문장이 있어야 한다.“휠체어로만 이동 가능하다”는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 심지어 휠체어 사용 기간까지 명시되어야 한다.

거기에다 장애인증명서는 민원정부 24시에서 발급받을 수 있지만, 장애정도결정서, 추가심사결과안내문, 그리고 종합병원 의사 진단서까지 요구받는다.

더 황당한 것은 이미 회원 등록 절차에서 '전동휠체어 사용' 여부를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은 이를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행이 불가능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을 행정은 다시 병원에 가서 ‘보행이 불가능하다는 문구가 적힌 진단서’를 떼 오라고 말한다.

행정의 공백, 그 사이에서 당황하는 공무원과 당사자

서류 보완 요구를 받고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더욱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다. 과거 등록된 장애인의 경우 데이터가 연동되지 않는다며, 콜택시 센터 직원은 "주민센터 직원을 바꿔달라"고 요구한다. 그러고는 주민센터 직원에게 "거기 뜨는 내부 행정 모니터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

정작 주민센터 직원은 이 상황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장애인 증명서 한 장이면 되는 것 아닌가요? 왜 이런 서류들이 또 필요한지 모르겠네요."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그 사이에서 당사자가 휴대폰을 들고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이동권 주소다.

무엇이 이들을 멈춰 세우는가

등급제 폐지의 무색함: 실제 이동의 어려움보다 ‘행정상 심한 장애 여부’가 우선시된다.

전동휠체어조차 증거가 되지 못하는 현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전동휠체어 사용조차 별도의 서류로 다시 증명해야 하는 이중 규제다.

이동권은 ‘시혜’가 아닌 ‘기본권’

장애인 콜택시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서비스가 아니다. 이동이 제한된 시민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필수 수단이다. 그러나 등록 단계부터 이용자는 심사를 통과해야 할 ‘대상자’로 전락한다. 국가는 권리를 보장하는 대신 ‘선별’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장애카드에 ‘심한 장애’라고 적혀 있고, 전동휠체어 없이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증명을 요구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등급제 폐지였나?

앞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할 것들

이에 불필요한 중복 증명은 폐지되어야 한다. 전동휠체어 사용 등 이동 제한이 이미 행정적으로 확인되었다면, 다시 병원 진단서를 요구하는 절차는 과도하다. 한 번 인정된 사실을 반복 증명하게 하는 구조는 개선되어야 한다.

이동 기능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서류 문구가 아니라 실제 이동의 어려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등급이나 분류보다 생활 속 이동 가능 여부가 우선되어야 한다.

한 번 등록하면 전국에서 동일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지자체마다 다른 기준은 형평성 문제를 낳는다. 전국 어디서나 통일된 기준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절차는 단순하고 안내는 명확해야 한다. 보완 요청 시 구체적인 설명이 제공되어야 하며, 현장 직원과 상담원조차 혼란스러운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언제쯤 “심사받는 권리”가 아니라 “당연한 일상”이 될 수 있을까?

콜택시 한 번을 타기 위해 병원과 주민센터, 콜센터를 전전하며 나의 신체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구걸하듯 증명해야 하는 이 구조를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 이동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동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그저 병원에 가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 속으로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기 위해 병원과 주민센터, 콜센터를 오가며 나의 몸을 반복해서 증명해야 하는 현실은 분명 과도하다.

이제는 묻고 싶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언제쯤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자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장되는 권리가 될까? 전국 어디에서든 동일하게 인정받는 이동권, 한 번의 등록으로 충분한 시스템, 종이가 아니라 삶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제도. 우리는 이동을 허가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동할 권리를 가진 당당한 시민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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