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돌봄, 지역사회라는 이상과 고령장애인이 마주한 현실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노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변화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노년기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장애인의 평균수명이 짧았고, 장애인 정책과 노인 정책은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장애인들이 노년기를 살아가고 있으며, 고령과 장애라는 두 가지 조건이 중첩된 새로운 사회집단이 형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은 여전히 "노인"과 "장애인"을 별개의 범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최근 핵심 복지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통합돌봄 정책에서도 이러한 한계는 적지 않게 나타난다.
통합돌봄은 분명 매력적인 비전이다. 시설 중심의 돌봄에서 벗어나 자신이 살아온 집과 지역사회에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현대 복지국가의 이상과 맞닿아 있다. 병원, 요양시설, 복지기관으로 분절되어 있던 서비스를 통합하여 이용자 중심의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향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통합돌봄이 제시하는 철학은 단순한 복지서비스의 확대를 넘어선다. 그것은 시민권의 확장이다. 누구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통합돌봄에 있어 장애 특성의 반영은 필수적이다. (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이 점에서 통합돌봄은 돌봄을 사회권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교육권이나 건강권처럼 돌봄 역시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돌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현재의 통합돌봄은 누구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안에 고령장애인은 존재하는가.
통합돌봄 정책의 주요 대상은 대체로 노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정책 문서와 사업 모델을 살펴보면 만성질환, 거동 불편, 치매, 독거노인 등의 문제가 중심에 놓여 있다. 물론 이러한 접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장애를 가진 채 노년기에 진입한 사람들의 경험과 욕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령장애인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장애인"도 아니고, "장애가 있는 노인"도 아니다. 이들은 오랜 기간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경험과 노년기의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는 독특한 삶의 조건을 가진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해 온 중증장애인이 고령이 되면 기존 장애인 서비스와 노인 장기요양서비스 사이에서 제도적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이동권, 의사소통 지원, 정보접근, 자기결정 지원 등 장애 특성에 기반한 욕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책은 종종 그를 단순한 "노인"으로 분류한다.
결국 고령장애인은 노인정책에서는 장애인으로, 장애인정책에서는 노인으로 취급되면서 어느 체계에서도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통합돌봄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재 통합돌봄이 강조하는 방문의료, 주거지원, 식사서비스, 생활지원은 중요하다. 그러나 장애인의 삶에서 핵심적인 요소인 접근성, 의사소통 지원, 보조기기 활용, 이동권 보장, 디지털 접근권, 자립생활 지원 등은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통합돌봄이 여전히 '보호와 돌봄' 중심의 관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운동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것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다. 그것은 자립생활과 자기결정권이다. 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의 주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통합돌봄 담론은 종종 이러한 장애인권적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그 결과 고령장애인은 서비스 수혜자나 사례관리 대상자로 위치 지워질 뿐, 지역사회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가능성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도 존재한다.
통합돌봄은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을 강조하지만 실제 운영은 상당 부분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방문요양기관, 활동지원기관, 재가복지센터 등 대부분의 서비스는 민간 공급체계를 통해 제공된다. 국가는 비용을 지원하고 서비스는 시장이 공급하는 구조다.
이러한 방식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돌봄의 권리성을 약화시킬 위험도 내포한다.
시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고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용자를 선호하지 않는다. 고령장애인은 의료, 돌봄, 이동지원, 의사소통 지원, 보조기기 지원 등이 동시에 필요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서비스 제공기관 입장에서는 가장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시장 중심의 운영구조는 가장 많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오히려 소외시키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통합돌봄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질문해야 한다. 통합돌봄은 단순히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행정체계인가. 아니면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장치인가.
만약 통합돌봄이 사회권의 실현이라면 정책의 출발점은 공급체계가 아니라 시민이어야 한다. 특히 장애와 노화를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고령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다. 필요한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사회관계를 유지하며, 디지털 환경에 접근하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진정한 통합돌봄은 누군가를 돌보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돌봄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인간을 의존적인 존재로 만드는 장치가 아니다. 더욱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오랫동안 싸워서 획득해 온 자립생활과 자기결정의 가치가 고령이라는 이유로 후퇴해서는 안 된다.
초고령사회의 통합돌봄은 이제 새로운 질문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넘어 "누구의 삶을 기준으로 돌봄을 설계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질문의 답 속에 고령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통합돌봄은 이름 그대로의 '통합'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