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비정상인 것이 아니라 ‘정상’의 기준이 너무 좁다 푸코의 “말과 사물”로 묻는 장애, 정상성 그리고 인간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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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비정상인 것이 아니라 ‘정상’의 기준이 너무 좁다 푸코의 “말과 사물”로 묻는 장애, 정상성 그리고 인간의 권리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상비정상으로 나뉘어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오랫동안 어떤 몸은 정상이라 부르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몸은 장애·결핍·의존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해 왔다

걷지 못하면 다리가 문제라고 했고, 말하기 어렵다면 언어기능이 부족하다고 했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립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정말 장애인의 몸이 문제였던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몸과 삶의 방식만을 정상적인 인간의 기준으로 세워 온 

사회가 문제였던 것인가. 이 질문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철학은 완전히 달라진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은 바로 이런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푸코가 직접 장애인 정책을 연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정상’, ‘비정상’, ‘질병’, ‘인간이라는 개념조차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푸코의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왜 어떤 사람을 정상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이 질문을 장애의 역사에 적용하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크게 변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 장애 정책을 지배했던 대표적인 관점은 의료모델이었다. 의료모델은 장애의 원인을 개인의 몸과 기능에서 찾는다

걷지 못하면 걷게 해야 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언어기능을 향상시켜야 하며, 일상생활 능력이 부족하면 훈련을 통해 기능을 높여야 한다

물론 의료와 재활은 필요하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치료를 제공하고, 필요한 재활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의료적 시선이 인간 전체를 설명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사람보다 장애를 먼저 보고, 삶보다 기능을 먼저 평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때 장애인은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사람과 비교된다. 걷는 사람이 정상이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비정상이며,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독립적이고 활동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의존적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푸코의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정상의 기준은 누가 만들었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계단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건물을 계단 중심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휠체어 사용자가 계단 앞에서 이동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의료모델은 묻는다. “왜 이 사람은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가?” 그러나 사회모델은 질문을 바꾼다. “왜 이 건물에는 계단밖에 없는가?” 

바로 이 질문의 변화에서 장애에 대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사회모델은 장애의 문제를 개인의 몸에서만 찾지 않는다. 계단, 좁은 출입구, 접근할 수 없는 교통수단, 정보의 장벽, 차별적인 고용환경과 같은 

사회적 조건을 함께 바라본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다리가 갑자기 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해결책도 달라진다

사람을 계속 훈련시켜 계단을 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운행하고, 직장을 접근 가능하게 만들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푸코의 말과 사물을 빌려 표현한다면, 장애인을 설명하는 이 달라지면서 장애인이 살아가는 세계도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장벽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권리모델이다.

 

권리모델은 다시 질문한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복지서비스인가아니면 권리인가?”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배려인가

아니면 동등한 시민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인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이 질문에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장애인은 보호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는 것이다.

 

이 변화는 매우 크다. 의료모델이 장애인에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면, 사회모델은 사회가 무엇을 막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권리모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시민이 누리는 권리를 제한받아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자립생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옷을 입고, 혼자 이동할 수 있어야 자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립생활운동은 자립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었다. 자립은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지원을 받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활동지원서비스를 하루 종일 이용하는 사람도 자신의 거주지와 일자리, 인간관계와 생활방식을 

스스로 결정한다면 충분히 자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복지서비스의 변화가 아니다

인간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시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중증장애인에게 시설이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전문가가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권리의 관점에서는 질문이 달라진다. “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살 곳을 

다른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가?” 문제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능력이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와 활동지원, 소득, 의료, 이동, 의사소통 지원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사회에 있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푸코의 철학은 장애인권리운동에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법에서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라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권리를 받기 위해 여전히 장애인은 자신의 무능력을 증명해야 하고,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야 하며, 점수와 등급에 따라 필요한 지원이 결정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정상화와 관리가 계속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 권리운동은 단순히 용어를 바꾸는 운동이어서는 안 된다. 누가 판단하고, 누가 결정하고, 누가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가를 

바꾸는 운동이어야 한다. 결국 푸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온 정상적인 인간은 과연 누구인가.

장애인권리운동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뇌성마비인도

의사소통에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면서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장애인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 사회는 특정한 삶만을 정상이라고 생각해 왔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장애인의 몸을 바꾸려고 했던 시대에서 

사회의 장벽을 바꾸는 시대로그리고 이제는 장애인의 삶에 대한 결정권과 권리를 보장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장애인이 비정상인 것이 아니다. 다른 몸과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의 기준이 지나치게 좁았던 것이다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장애인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어 온 사회의 오래된 기준 그 자체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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