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어도 우리 아이가 지낼 곳’은 생겼지만 부모의 죽음은 누가 설명해줄까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부모 부재 이후 삶’에 사별·애도까지 담아야
【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 “내가 없어도 우리 아이가 지낼 곳이 있다.”
지난 9월 10일 정부가 발표한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추진방안」에 등장한 문장이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평생 품어온 절박한 질문에 국가가 공식적으로 답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
정부는 부모의 고령화 등으로 더 이상 자녀를 돌보기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해 지역사회 자립지원을 확대하고, 최중증발달장애인에게 제공되는 24시간 개별 1:1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부모가 더 이상 곁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사자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공공후견과 재산관리 지원도 강화한다. 2027년 「장애인지역사회자립법」 시행에 맞춰 주거·일자리·활동지원 등을 연계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아직 체감되는 것은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반가운 변화다.
발달장애인의 부모사후를 이야기하면 늘 비슷한 질문들이 나온다. “우리 아이는 어디서 살죠?” “누가 돌봐주나요?” “돈 관리는 누가 안전하게 해주나요?”
이 질문들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발달장애인과 부모사별을 이야기해 온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 보태고 싶다.
“그런데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은 누가 설명해줄 것인가?”

발달장애인과 함께한 '나의 묘비명 쓰기'. ©김영아
부모의 죽음은 단지 돌봄 제공자 한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어떤 발달장애인에게 부모는 매일 밥을 함께 먹던 사람이고, 아침에 깨워주던 사람이며, 병원에 같이 가던 사람이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던 사람이다. 오랜 시간 삶의 일정과 선택을 함께 만들어 온 가장 가까운 관계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어느 날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가 사라진 뒤의 ‘서비스’를 준비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에게 벌어진 ‘상실’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는가.
“엄마가 병원에 갔어요.” “아빠가 하늘나라에 갔어요.” “이제 못 만나요.”
우리는 종종 발달장애인이 충격을 받을까 봐,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죽음에 대한
설명을 미루거나 모호한 표현으로 대신한다. 장례식에서도 당사자를 제외시키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는 대부분 ‘보호’라는 이유가 붙는다. 너무 충격을 받을까 봐, 감정이 격해질까 봐, 장례식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할까 봐, 죽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부모나
가족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사별의 과정에서 한발 물러서게 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당사자에게 부모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장례와 작별의 과정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정말 보호인가.
발달장애인이 부모의 죽음을 알고 장례에 참여하는 과정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큰 슬픔을 느낄 수도 있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수도 있으며,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 그 자체라기보다 위험가능성을 동반한 삶의 경험에 가깝다. 우리는 비장애인의 삶에서도 슬픔이나 실패, 이별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그 경험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곁에서 설명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발달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부모사별의 과정에서 당사자를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보호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또 다른 차별이자 배제가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지막
얼굴을 보고, 장례에 참여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인사를 건네고, 그 사람이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은 발달장애인에게도 필요한 경험이다.
물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장례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는 빈소에 오래 머물기 힘들 수 있고, 누군가는 고인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꽃 한 송이를 놓는 것으로, 사진 앞에서 인사하는 것으로, 좋아했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작별하고 싶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를 처음부터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쉬운 말과 그림으로 충분히 설명하고,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싶은지 묻고, 참여 과정에서 불안하거나 힘들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보호에 더 가깝다.
사별을 인지하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경험은 슬픔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고, 왜 부모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는 것보다 자신의 삶에 일어난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또한 이같은 경험은 이후의 건강한 애도와 일상 회복을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설명하지 않는다고 죽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아무런 설명 없이 익숙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고, 살던 집이 바뀌고, 지원자가 바뀌고, 생활시간표까지 달라진다면 당사자가 겪는 혼란은 훨씬 커질 수 있다. 발달장애인에게 부모사별은 관계의 상실과
생활환경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때문에 부모사후 대책은 ‘누가 돌볼 것인가’를 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부모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아프거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장례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고 지지받을 것인지, 부모가 하던 지원을 앞으로 누구와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까지 함께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빠져서는 안 된다.
현재 정부의 국가책임제는 ‘부모의 고령화’, ‘부모의 부재’를 정책의 중요한 과제로 명시하고 있다. 보호자가 부재한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24시간 지원 확대뿐 아니라 공공후견, 재산관리, 지역사회 자립과 통합사례관리 강화까지 담았다. 정부가 부모의 부재를 더 이상 개별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지원이 필요한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제 그 ‘부재’의 의미를 조금 더 넓혀야 한다.
주거를 정하는 것과 함께 관계의 변화를 준비하고, 재산을 관리하는 것과 함께 자신의 삶에 대한 의사를 표현하도록 돕고, 새로운 지원자를 연결하는 것과 함께 이전의 관계를 충분히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꼭 새로운 지원이나 서비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개인별지원계획 안에 ‘주 돌봄자 변화 및 사별 준비’를 포함할 수 있다. 부모교육에서도 재산과 후견 뿐만 아니라 자녀와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포함할 수도 있다.
중고령 발달장애인에게는 쉬운 정보와 그림, 반복적인 경험을 활용한 죽음교육과 사별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장례 지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당사자가 장례에 참여할 수 있는가’를 가족이 대신 결정하기 전에, 어떤 설명과 지원이 있다면 참여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장례 참여 여부와 방식 역시 가능한 범위에서 당사자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건강할 때부터 물어야 한다.
“엄마나 아빠가 아프면 누구에게 전화하고 싶어요?” “앞으로 어디에서 살고 싶어요?”
“누구와 계속 만나고 싶어요?” “엄마가 해주던 것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부모가 대신 답하는 부모사후 계획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만드는 부모사별 준비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은 부모가 사라진 뒤 비어버린 ‘돌봄의 자리’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작별할 기회, 슬퍼할 권리, 변화된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가족상실을 표현하며 애도하는 시간은 일상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사자와 애도나무 만들기 활동 중). ©김영아
발달장애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이유로 삶의 중요한 경험에서 제외시키는 사회가 아니라, 위험가능성이 있는 삶의 순간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내가 없어도 우리 아이가 지낼 곳이 있다.”
이 문장이 부모에게 안심을 주는 문장이라면, 이제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도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에도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겠습니다. 충분히 작별하고 슬퍼할 수 있도록 곁에 있겠습니다. 이후의 삶도 당신과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부재’를 진짜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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