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애운동의 정체성
아마도 초기의, 대략 1970년대의 유럽에서 시작된 장애운동은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의 처우와 장애의 지나친 의료화에 대한 항거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접근성의 문제가 극명하게 규명되었고, 기존의 장애의 개념을 초월케 하는 장애의 사회모델이 대두되었다.
1983년 영국의 장애 학자 마이클 올리버에 의하면, ‘의료 모델은 장애인의 손상된 부분을 치료하는 것이고, 사회모델은 장애인을 장애로 만드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제법 연륜이 깊어진 외국의 장애 학의 문헌에서는 장애운동이 전반 적으로 긍정적이었다는 관점이 피력되고 있다. 정치적 변화를 유도해 낸 집단적 능력에서 그리고 장애인당사자들의 참여의 체험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장애운동을 통한 장애인의 정체성이 장애인들로 하여금 손상/장애에 대하여, 그리고 한 사회 속의 위치에 대하여 생각해볼 실마리는 분명히 제시하는 듯싶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문제는 있는 것 같다. 과연 한국의 장애운동에 공동체 의식, 정치적 연대와 결속은 분명히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긍정적 요소보다는 오히려 분열적이고, 장애운동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다는 서구 장애학계의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우 이익을 둘러싼 장애 단체들 간의 갈등과 경쟁의 경험이 먼저 떠오른다.
운동권 장애단체와 전통적인 주류의 장애단체를 구분, 차별화 하는 경향도 있다. 단, 한국의 장애운동 만이 딱히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도 ‘이동권 연대’ 등 눈에 띠는 장애운동이 있고, 4월의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단체들이 대거 운집하지만, 어쩐지 한국의 장애운동은 소수만의 프로테스트이었고 운동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어떤 장애단체의 데모가 다른 단체에 의해 지원은커녕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장애단체 중에도 현상유지, 기득권중심의 보수적 성격이 강할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이념이나 가치를 지향하는 진보성을 띤 단체도 있을 것이다.
“장애단체들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유엔장애권리협약」에 대한 직원 교육을 철저히 하는가?” “과연 장애인 중에 「유엔장애권리협약」에 대한 이해가 깊은지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장애운동에 적극 참여 한 경험이 얼마나 있는지? 아니라면 그 이유?” ‘장애운동을 지지하는 장애인은 얼마나 되며, 지지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아니면 ‘한국장애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등등의 연구주제 말이다. 웃어넘기자는 말이 아니고 ‘한국의 정치가, 사회 지도자들의 지속되는 장애비하 발언의 근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에 대한 법적, 전략적 대책이 장애 계를 중심으로 시도되어야 하지 않는가? 선거철이 임박해 오는데, 정당에 유혹당하거나 사욕으로 인해 정치에 입문하지 말고 진정으로 장애 계를 대표하는 대표성 있는 인사가 국회에 진출하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장애운동에서의 장애유형별 구별이나 차별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이다. 장애의 다양성에 대하여 집요하게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동과 장애여성이 주류 장애 운동에서 배제되거나 무시, 소외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소수민족에 대한 무시나 차별과 유사하다.
여성장애단체의 주류 운동권에 대한 비난은 경청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기회 있을 때 마다 지적하지만, 장애계는 좀 더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2014년 ’도가니‘ 사태, 혹은 ’염전 노예‘사건이 났을 때 얼마나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장애전문가들이 큰 소리로 성토하고 분노해 했는가? 그 많은 사회복지학과나 장애인복지관들 중 어느 하나가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와 시위한 적이 있었던 건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정치권의 장애비하 정치가들을 솜 방망 같은 결정만하는 국가 위원회에 제소만 요청하는가? 필자가 도서출판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으로 전국을 돌며 ’사회복지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 초기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사회복지사의 인권은 누가 수호하는가? ‘하며 서울 시청 앞에서 사회복지사들이 교대로 시위하던 오래 전의 일이 생각이 난다. 그런데 '도가니', '염전 노예' 사태 때에는 왜 그렇게들 침묵했던가?
구태여 운동권과 정체성이나 철학을 공유하지 않는다 해도 분명히 분노하고 성토할 사안과 쟁점에 대해선 일체감을 가지고 모두 일어나야 한다. 간혹 「한국의 장애인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있는데, 왜 보다 더 포괄적이며 심도 있는 국제법인 「유엔장애권리협약」의 철학과 원칙을 핵심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장애운동을 결집하고 확산시키지 못하는가?
무엇을 위한 장애 운동인가? 역사적으로 주어진 기회를 장애 계가 상실하는 것이 아닌가? 장애운동의 구체적인 비전, 목적은 무엇인가?